미식 대장경(美食 大藏經)
  • Prev Page
  • List
  • Next Page

h2mark Chapter 1. 노포(老鋪) 맛집 > 복래춘

♣ 복래춘: Since 1961 | '봄은 다시 온다'는 믿음으로 빚어낸 70년 중국 제과의 정수

중구 복래춘 전경
상호 복래춘
메뉴 수제월병, 공갈빵
연락처 032-772-3522
주소 인천 중구 선린동 10-2
알림 📢 방문 전 영업시간&예약 확인

Naver Map KaKao Map Google Map

♣ 소개

복래춘은 1951년,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서울 소공동의 생활을 뒤로하고 인천에 정착한 1대 곡방주 사장과 2대 곡계경 사장이 설립한 유서 깊은 중국 제과점입니다. '봄이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의 상호에는 전쟁의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고자 했던 화교 가족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1920년대부터 이어진 가문의 비법은 현재 3대 곡회옥 사장에게 전수되어, 70년 넘는 세월 동안 차이나타운의 달콤한 향기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흔히 부르는 '공갈빵'이라는 명칭이 바로 이곳 복래춘에서 손님들과의 유쾌한 실랑이 끝에 처음 지어졌다는 사실은, 인천 제과사(製菓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흥미로운 기록입니다.

중구 복래춘 대표 음식

1. '공갈빵' 이름이 시작된 발상지: 속이 텅 빈 빵을 보고 "공갈친 것 아니냐"는 손님들의 항의를 위트로 승화시켜 국민 간식의 이름을 탄생시킨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2. 북방식 제과의 전통 고수: 쌀보다 밀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정통 북방식 조리법을 유지하여, 겉은 바삭하고 속은 고소한 풍미가 살아있는 과자를 빚어냅니다.

3. 3대를 관통하는 인고의 시간: 화교 탄압 정책과 해외 이주 등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부모님을 모시고 가업을 지키기 위해 돌아온 3대 사장의 숭고한 가족애가 서려 있습니다.

4. 차이나타운의 살아있는 박물관: 1951년 개업 당시의 잡화점과 제과점 형태를 거쳐, 오늘날 인천 중산학교 앞 골목을 지키며 화교 사회의 변천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중구 복래춘 내부 인테리어

♣ Story

전쟁을 딛고 피어난 '다시 오는 봄'

복래춘은 1951년 창업주 곡방주 사장과 아들 곡계경 사장이 창업하였다. 곡 사장이 한국에 정착한 시기는 1920년대 초반으로, 중국 내전을 피해 서울 소공동에 자리를 잡고 잡화와 제과를 겸한 ‘유성항(裕成恒)’을 운영했다. 1951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인천으로 이주하게 된 곡 사장은 유성항을 정리하고 새로 가게를 차려 ‘복래춘(復來春)’이라 하였다. 이는 ‘봄은 다시 온다’는 뜻으로, 서울 시절을 추억하며 다시금 번영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다.

3대 곡회옥 사장의 헌신과 가업

현재 복래춘을 운영하는 3대 곡회옥 사장은 곡방주 사장의 손자다. 그는 17~18세부터 본격적인 후계 수업을 받았다. 한때 서울의 한의원에 취직하거나 일본으로 건너가 고생하기도 했고, 1970년대 화교 경제 탄압 정책 시기에는 타이완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 남은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다시 돌아와 가업을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갈빵 명칭의 유래와 북방식 과자

복래춘의 자랑은 중국 전통 과자와 공갈빵이다. 이곳의 과자는 밀을 주로 사용하는 북방식으로, 바삭바삭한 식감이 특징이다. 특히 둥글고 커다란 빵 속에 아무것도 없는 ‘공갈빵’은 곡회옥 사장의 어머니가 처음 이름을 붙였다. 당시 부두 노동자들이 큰 크기에 반해 샀다가 속이 빈 것을 보고 “공갈친 것 아니냐”고 따져 묻자, 어머니가 그 말을 따서 ‘공갈빵’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Video icon YouTube

▸Copywriting Polished by Google Gemini AI

  • Prev Page
  • List
  • Next Page

← Back to List

Icon Loading